Orbis Tertius
만화경
소설

만화경

제1부

서장

끝도 시작도 없는 세계가 있다. 그곳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고, 시간은 흐르지 않으며, 실존과 본질은 구분되지 않는다. '사변 우주'는 모든 가능성의 중첩이자, 아직 열리지 않은 무한한 세계의 집합이다. 이곳의 거주자인 '사변자'들의 사념이 곧 현실이므로, 그들의 사고와 존재 사이에는 어떠한 간극도 없다. 그들의 의식은 곧 세계이고, 생각은 곧 실재이다. 여기서는 먼저와 나중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과 없음이 하나의 단어로 쓰인다.

사변 우주를 유한한 언어로 묘사하는 것은 고차원의 풍경을 저차원의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것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무모한 비유를 감히 시도해 보자면, 그곳은 거대한 도서관이자 동시에 그 도서관에 쓰인 모든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를 쓴 작가이다. 책장과 책, 독자와 저자, 기표와 기의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총체를 이룬다. 사변자들은 도서관이면서 동시에 도서관의 사서이자 책이고, 책에 적힌 문장과 단어 그 자체이다. 그들이 생각 속의 관념을 구체화하는 순간 새로운 우주가 생긴다. 수학자가 자신의 증명에 새로운 공리계를 정의하고 도입하듯, 그들은 다양한 법칙의 우주를 설계한다. 어떤 이는 순수한 기하학적 아름다움만으로 이루어진 우주를 만든다. 그곳에서는 우주 전체에 걸쳐서 오직 끊임없이 변화하는 프랙탈 패턴만이 공간을 초월한 춤을 춘다. 다른 이는 정보와 실재가 어떠한 시간과 인과도 없이 무작위적인 우주를 길쌈한다. 그곳은 예측할 수 없으며 혼돈만이 편재한 것처럼 보인다.

무한한 가능성을 함축한 사변 우주에도 법칙과 한계는 존재한다. 사변자들은 어떤 수를 써도 자신들의 우주와 똑같은 우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칼로 물을 가를 수 없듯이 사변자들과 사변 우주는 구별할 수 없으니, 선험적으로 모든 사변자에게 각인된 사실이다. 자신들과 똑같은 우주를 만들 수 없으므로 자신들과 똑같은 자들도 만들 수 없다. 사변 우주와 사변자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성질을 어긴 것처럼 보이는 하위 우주가 종종 등장하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러할 뿐, 결국 본질은 사변 우주와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들의 우주를 탐구하기 위해, 하위 우주를 하염없이 만들어 낸다. 하위 우주의 창발성에 기대어 그들의 사변 우주와 동등하거나 초월하는 우주를 만드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사변 우주에서는 명멸하는 하위 우주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영속한다. 사변 우주 그 자체이자, 사변 우주를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인 사변자들은 시공간이라는 추상적 틀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잘게 나누어도 그보다 항상 빈틈없이 더 작은 단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연속성은 시공간의 중요한 특질이다. 따라서 연속성은 사변자들에게도 발현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자신의 일부를 상실한 채로 존재한다. 개념과 관념, 모든 것들이 직선 속의 점처럼 빽빽하게 메우는 다른 사변자들과는 달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재의 마디가 그의 존재를 분절했다. 분절된 마디 사이사이는 연속적이었지만, 연속된 구간 사이의 틈은 그에게 불연속과 가산이라는 새로운 성질을 가져다주었다. 하필이면 그가 이렇게 태어난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무한한 사변자들의 가능성 중에 필연적으로 발현되어야 할 돌연변이가 그에게 나타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동족과는 다르게 사고하며 사변 우주를 인식했다. 의미란 무엇인가? 감정인가, 기억인가, 아니면 그 모두를 아우르는 더욱 추상적인 무엇인가? 정보는 에너지와 입자의 배열이지만 의미는 그 이상이다. 의미는 정보를 바라보는 존재의 내부에서 새롭게 피어난다. 정보는 어떤 우주에서도 빈출하는 반면, 의미는 드물다. 사변자가 만들어 낸 수많은 하위 우주에서 의미란 지극히 희귀하다. 대부분의 우주는 질량과 에너지 등의 실재가 법칙과 정보에 따라 움직일 뿐, 그것을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할 주체가 없다. 그러나 적절한 복잡성, 시간의 확률적 비가역성, 정보와 에너지의 국소적 집중이라는 특별한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우주는 '의식'이라는 것을 기적처럼 잉태한다. 그리고 의식이 있는 곳에서 의미가 창궐한다.

사변 우주에서 탄생한 모든 물질적 우주는 각자 다른 최후를 가진다. 대단히 긴 시간이 흘러야 맞이하는 죽음이지만, 그 시간은 영원과 한없이 멀고 찰나와 더없이 가깝다. 어떤 우주는 물질로 가득 차서 영속하고, 어떤 우주는 강력한 힘으로 현실이 찢어져 버리지만, 어떤 우주는 열죽음이라는 형태로 끝을 맺는다. 그런 우주는 그저 입자가 가만히 정지한 채로 요동하는, 아주 차가운 수프가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체로 의미가 풍부한 우주는 이런 형태로 영면한다.

그 상태에서 영겁의 시간이 흐를 수 있다면 엔트로피의 확률적 특성으로 인해 무작위성 속의 질서가 출현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열죽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그런 상상을 하는 고도로 복잡한 연결성을 가진 유기물이나 우주 전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가 텅 비어 보이는 우주 공간 한가운데에 난데없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의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아니면 유구한 세월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스노 글로브를 뒤집었다가 이번에는 어떤 형태로 눈이 쌓일까 관찰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을 기약 없이 반복하는 일과 다를 바 없었다. 채널이 무작위적으로 돌아가는 전 우주적 바보상자는 그에게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우주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발생한 자들이 남긴 부산물, 그들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비통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의식들의 삶이 남긴 흔적만이 그가 찾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우주가 열죽음 상태로 돌입하기 전, 최후까지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천체는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자신의 중력권에 영향을 받는 모든 물질을, 심지어 빛까지도 빨아들인다. 블랙홀이 가지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는 모든 물질은 탈출할 수 없고, 중력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놓인다. 모든 물질은 특이점으로 빨려 들어가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소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이점 내부에 대해서 알 길이 없는 상태에서 블랙홀은 아무런 정보를 담고 있지 않는 입자를 방출하며 질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변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우주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하위 우주에 있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의 특이점마저도 관측할 수 있다. 특이점에는 기존의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는 새로이 생성된 공간이 있었다. 외부의 우주와 완벽히 격리된 까닭에 이는 다른 우주라고 일컬어도 무방했다. 특이점 속 우주에는 블랙홀이 물질로부터 분리한 정보의 실체가 담겨있었다. 물리적 실재에서 벗어난 정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블랙홀 안을 볼 수 없는 존재들은 어차피 이해하지 못했다. 그 편린만을 블랙홀 표면에 아로새겨진 양자적 정보로만 읽어낼 수 있을 따름이다.

다른 사변자들에게 그런 것들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에 불과했다. 그들은 우주의 시공간 전체를 한꺼번에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었다. 사변자들이 하위 우주에 대해서 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그 하위 우주에 살던 이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뇌 혹은 그 유사한 기관, 그들의 동작 방식과 구조, 구성과 패턴, 데이터는 전부 알 수 있었지만, 그때 그들이 느꼈던 감각과 의식,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읽어서 모든 글자를 외우고, 행간을 전부 파악해도 등장인물의 모든 감정을 체득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개체가 가진 뇌, 혹은 그에 준하는 기관에서 펼쳐지는 일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갖출 수는 있다. 그 일에 관여하는 요소에는 전기신호와 화학 물질의 농도, 신경의 연결성 등이 있고, 그 외에도 열거하자면 대단히 많지만, 이는 사면자에게 큰 난관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실제로 연속적인 자아라는 허상을 구체화해서 어떤 정신을 빚어냈는지 아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들은 불연속적이고 유한한 언어, 열등한 사고 체계로 표현하고 사유하므로, 성질이 완벽히 다른 사변자들은 그들을 이해하기 더욱 어렵다.

다른 이들이 우주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행위에 집중하는 반면, 그는 수명을 다해서 쓸모없어진 우주를 찾아가, 블랙홀 속에서 압축된 정보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았다. 생명이라는 유한한 존재들이 남긴 영원한 흔적을 뒤쫓았다. 그는 죽은 우주에서 블랙홀에서 정보를 추출하고, 블랙홀이 잃은 질량과 입자, 에너지를 모두 추적했다. 그리고 그 정보를 토대로 입자를 재조합하여 과거의 일을 재현했다. 개체의 기억과 정서를 다시 조합해 낸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과는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복각'에 가까웠다. 그는 이미 쇠락하여 먼지로 돌아가 버린 현실의 잔상을 다시 조립했다. 그렇게 하여 의미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복각의 과정을 거치면 개체의 삶을 전체 우주와 분리해서 낱낱이 파악하고 조명할 수 있다. 그들의 기억과 감정을 오롯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의미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그를 매혹했다.

사변자는 한번 읽은 우주를 다시 펼쳐보지 않는다. 그런 우주는 점점 힘을 잃어가다가 결국 사라져 버린다. 그 우주의 정보는 사변자의 무한한 구성으로 환원된다. 구체화한 물리적 성질과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다시 관념이 되어 사변 우주에서 잊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일종의 상실은 곧 다른 사변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소유라는 집착으로 이어졌다. 그가 나머지와 다른 것처럼 나머지도 그와 달랐다. 다른 사변자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그도 다른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의미와 우주의 휘발성은 곧 불완전함을 상징했다. 그는 절대불변하여 상태가 변화하지 않는 하위 우주 하나를 손수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사변 우주와 완벽히 분리된 자신만의 새로운 도서관으로 삼았다. 그는 도서관에 그가 찾은 의미를, 그 끝없는 숫자의 이야기를 모조리 기록했다. 블랙홀에서 꺼내고 복각한 존재들의 이야기는 모두 그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는 세심하게 글을 쓰는 것처럼 정보의 흔적과 물질로 이야기를 저작하여 우주에 담았다. 그것은 입자와 에너지라는 문자와 물리법칙이라는 문법으로 작성한 글이다. 그곳에서 모든 글은 박제되어 영원토록 반복된다.

제2부

42i. 허구

그는 자기 손을 쥐었다 폈다가 하기를 거듭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 감각의 실체에 대해서 분명 인지하고는 있지만, 인식과는 달리 체감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의 물리적 존재와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누군가가 현실과 이 가상의 세계에서 느껴지는 차이를 기술하라고 한다면, 그는 단 한 문장조차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악한 단어 몇 가지를 떠듬떠듬 쓰기조차 불가하리라. 그는 고개를 젓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가상 세계로 접속할 때, 현실 세계의 정신이 암전할 때의 배경과 완벽히 똑같았다. 전원을 끄기를 까먹고 켜놓은 홀로그램 입체 영상 화면부터 시작해서 의자, 침대, 알리오 올리오 맛이 나는 영양 튜브가 먹다 남아 이리저리 구겨진 채로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것까지도.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자기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가상 현실에 접속하지 않았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유체 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현재 방을 인식하고 있는 자신과 별개로 그의 육체가 시체처럼 고요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두 손을 고이 모아 명치 부근에 올려놓은 채, 영원한 잠에 빠진 것처럼 쌕쌕거리고 있었다. 그는 비로소 이 모든 것들이 지금 현실에 있는 모습을 그대로 재구성한 광경임을 깨달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침대에 누워있는 자기 몸으로 다가갔다. 홀린 것처럼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누워있는 몸의 팔뚝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든 것이 다 가상으로 이루어진 환영이라고 생각하고, 접촉하는 순간 연기처럼 형체가 무너져 내리리라 예상했던 까닭이었다.

인상을 잠시 찌푸린 그는 실험이라도 하는 양 자신의 몸을 더 적극적으로 건드렸다. 손등으로 툭툭 쳐보기도 하고, 손끝으로 콧잔등을 간질여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손이 무언가를 만진다는 느낌을 제외하고는 그 외의 신체 부위에 어떠한 감각도 감지할 수 없었다. 부드러운 살갗과 탄탄한 근육, 곧은 뼈를 느끼는 손끝의 촉감만이 뇌에 전달될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유령이라도 된 듯한 기묘한 감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한 손으로 누워있는 자신의 양 볼을 쥐었다. 잠에 빠진 것처럼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입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구강 내의 점막과 혀, 입천장과 잇몸이 타액으로 축축하게 젖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식되지 않도록 치아가 모두 나노 코팅이 되어 있어서 반짝였다. 일부러 교정하지 않아 아랫니가 살짝 회전된 것이 영락없는 그의 구강 구조였다.

그는 몸을 만지던 것을 멈추었다. 침대 옆에 존재하는 신체 모니터링 장치와 모니터링 정보를 출력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심박수와 혈압, 뇌파, 그 외에 모든 신체 정보가 정상으로 보였다. 특히 뇌파는 복제된 그가 꿈을 꾸고 있거나, 모종의 상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되었다. 그는 손을 누워있는 몸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복제된 그가 숨을 쉴 수 없도록 입과 코를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몇 초가량 지나자, 화면에 출력되는 심박수와 혈압에 변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박수와 혈압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러나 그의 복제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얼굴에 홍조가 생기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생리 반응조차 없었다. 그는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그의 머릿속에 더욱 잔인하면서도 흥미로운 생각이 화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가 만약 누워있는 본인의 장기를 해체하여 심장을 꺼낸다 해도, 현실의 그, 지금 이곳으로 정신을 떠나보내고 가지런히 침대 위에 실제로 누워있는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도 마찬가지라서 누군가 그의 방에 침입해서 그를 무참히 살해한다고 해도, 이 현실 자체, 누워있는 모습으로 복제된 자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느낄 수 있는 '나'는 사라져도, 그의 뇌와 연결된 외부 데이터베이스에 복제된 정보가 남을 테니까.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그도 모르게 팔에 돋은 닭살을 발견하곤 한다. 현실과 가상은 구분할 수 없는 것인가? 그는 재차 고개를 휘저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고민이 쓸데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은 현실의 우주를 금세 망각했다. 무척이나 자유로운 새 우주를 받아들이는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현실은 가상 현실로 대체되었다.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도 가상 현실 속에서는 능히 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현실과 완전히 동일한 정밀도로 실재를 구체화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미시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양자역학적 현상을 구현하는 것, 쿼크와 글루온 같은 기본입자에서 출발하여 우주의 모든 존재를 직접 직조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계산량이 필요하다는 결점을 차치하더라도 효율적이지 못한 자원 낭비에 불과했다. 가상 현실은 결국 현실의 관측을 바탕으로 실재를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은 수학적, 계산 가능적 근사가 필요하다. 이는 결국 필연적인 오차의 발생으로 귀결한다. 따라서 가상 현실의 목적은 삼라만상의 날실과 씨실, 모든 구조를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고 개체의 감각과 의식만을 속이는 것이다. 그 정도의 해상도라면 자의식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개체는 가상과 현실과 구분할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의식은 추상화된 정보를 믿고 느끼는 것이고, 그것이 곧 실재다.

그럼에도 그는 가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결정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지 문제가 튜링 기계로 풀릴 수 없는 일이듯, 시뮬레이션의 정지 문제를 고안해 내려 애썼다. 추상적 개념들은 우리가 구상한 수학 모형, 예를 들면 보편 튜링 기계로 계산할 수 있을까? 무작위적인 상념이나 물리법칙을 위배하는 사고 실험도 계산 가능한 것인가? 사고 실험하는 뇌를 시뮬레이션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뇌가 마법이 존재하는 게임 세계같이, 다른 우주나 과학 바깥의 세상을 공상하고 있다면 그 공상까지 전부 구현해야 하는 것인가, 혹은 공상하는 뇌의 물리적 형태만 구현하면 되는가? 추상적 개념의 실존에 관한 문제, 허구의 존재론적 고찰과 가상 현실은 마냥 각자의 전혀 다른 영역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사물과 현상을 감각하는 이가 가상 현실을 어느 수준의 해상도로 접근 가능하냐에 달린 문제였다.

그는 문득 생각을 멈추고 다시 누워있는 몸을 응시했다. 그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아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여러 가지 장치를 생각했다. 눈을 다시 뜨자, 뇌를 스캔할 수 있는 장비와 가상 현실 접속 헤드셋이 그의 앞에 난데없이 생성되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두뇌 스캐너를 복제의 관자놀이에 장착하고, 가상 현실 접속 헤드셋을 스캐너가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씌웠다. 헤드셋은 귀를 포함하여 머리 전체를 덮었지만 특이하게 정수리 근처가 뚫려있었다. 그는 레이저 커터도 손에 소환했다. 그러고는 누워있는 몸의 팔뚝을 살짝 그어보았다. 두부처럼 피부와 근육이 잘려서 뼈가 노출되었다. 초고열로 단면이 익어버렸기 때문에 출혈은 거의 없었다. 그가 오른쪽 눈만 깜빡이며 윙크하니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새살이 돋아나며 잘려있는 피부와 근육이 재생되었고 흉터도 찾아볼 수 없이 상처가 아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헤드셋과 두뇌 스캐너를 작동시켰다. 헤드셋이 약간의 소음과 함께 동작하자, 두뇌 스캐너가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을 투사했다. 영상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이상해할 것 없는 내용이었다. 영상의 화질이 매우 좋아서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편미분방정식을 풀고 있는 것이 보였고, 소리도 들려서 사람들과 어떤 주제로 대화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재밌게도, 대화의 주제는 현재 풀고 있는 수학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최근에 유행하는 게임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상은 바로 가상 현실 속의 가상 현실에서 그의 복제가 행동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는 섬세하게,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복제의 두피를 크게 도려내었다. 어느샌가 수술 보조 장비들이 주위에 자리해서 혈액을 빨아들였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업을 멈췄던 그는 커터를 다시 켜서 서슴없이 두개골을 절개했다. 두피를 떼어낸 형태 그대로 해골에 커다란 구멍을 낸 것이다. 절단한 뼈를 들어내자, 꿀렁거리는 분홍색 뇌가 보였다. 두뇌에는 대뇌피질, 뇌량 등을 구분할 것 없이 컴퓨터 등의 전자장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가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자, 증강 현실 영상이 그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허공에 나타났다. 그가 시선을 뇌로 옮기자, 뇌의 지도가 전부 그려져서 어느 부분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상세한 정보가 빼곡히 그의 시야를 채웠다. 그는 그중에서도 언어의 가장 대표적인 영역을 찾았다.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만을 남기고 모든 정보를 시야에서 지웠다. 증강 현실 영상은 녹색으로 브로카 영역, 자주색으로 베르니케 영역을 축축한 뇌에 표시해 주었다.

먼저 테스트할 것은 브로카 영역이었다. 그가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에는 엄지손가락 한마디만 한 정도의 캡슐이 자리했다. 그는 살짝 손을 움직여 캡슐을 자극했다. 캡슐이 반으로 갈라지며 열리더니 그 속에서 눈에 거의 보일 듯 말 듯 하는 점들이 튀어나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금세 군집을 이루었다. 점들은 구름을 이루어 그의 손바닥에서 세 뼘 정도 되는 높이에서 둥둥 떠 있었다. 그가 뇌를 가리키며 고개를 까딱하자, 점들은 순식간에 뇌로 날아갔다. 그것들은 사람이 손에 닿을 수 없는 부위의 세밀한 조작을 위해 개발된 나노 로봇이었다. 로봇들은 다른 뇌세포의 손상 없이, 접촉조차 없이 뇌에 침습하여 그가 원하는 부위의 뉴런에 접근했다. 전전두엽의 브로카 영역은 언어를 표현하는 기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곳에 피해를 당할 경우 의미를 이해하고 제한적으로 전달할 수는 있으나,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노 로봇이 브로카 영역으로 향하는 전기신호를 교란하자, 모니터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했다. 가상 현실에서 다른 존재와 유창하게 이야기하던 그가 갑자기 단편적인 단어로만 의사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언어 기능이 복구되었다. 아마 뇌에 삽입된 컴퓨터들이 언어 기능에 문제가 생긴 사실을 감지하고, 언어 보조 기능을 강화한 탓이리라. 어찌 되었든 그는 자신이 생각한 가설의 일부를 확인했다. 더 정확한 검증을 위해, 브로카 영역에서 나노 로봇을 제거하고, 뇌의 손상을 원상 복구시킨 뒤, 나노 로봇을 이번엔 베르니케 영역에 침투시켰다. 베르니케 영역은 반대로 언어와 의미의 이해에 관한 작업을 수행하므로, 이 영역이 손상된다면 발화는 유창하나 그 내용은 전혀 의미 없는 문장의 나열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역시 마찬가지로 실험 결과는 같았다. 가상 현실 속의 복제는 유창하게 말을 하나, 문장과 문장의 맥락이 이어지지 않고 그 한 문장 내에서도 내용이 횡설수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맞춰서 중첩된 가상 현실 속 인물들의 행동과 시나리오가 바뀌었다.

그는 고개를 주억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작게 웅얼거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일은 꽤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다. 그는 이전에 썼던 나노 로봇의 몇백 배 정도 되는 양을 복제의 뇌 전체에 흩뿌려 놓았다. 그리고, 헤드셋을 조정하여 복제의 뇌가 접속하여 상상하고 있는 시뮬레이션을 교체했다. 시뮬레이션의 내용은 지금 그가 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작업이었다. 즉, 그가 가상 현실에 접속해서 복제된 자신이라는 사물의 뇌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복제된 자신도 중첩된 가상 현실 속에서 다시 복제된 몸의 뇌를 해부하고, 그 속에서 또 중첩된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것이다. 실험에서 그가 답을 찾고 싶은 물음은 '과연 이 재귀적 구조가 어디까지 반복될 것인가?'이다. 시뮬레이션과 가상 현실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그는 시뮬레이션의 중첩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현실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면 프로그램을 실행하자마자, 컴퓨터의 연산량에서 가능한 최대 개수의 중첩을 만들고 바로 연기를 내며 뻗어 버렸으리라.

그는 결과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는 곧 접속을 종료했다. 그가 어떤 광경을 보았는지는, 그리고 목격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이후 다른 이들처럼 정신을 컴퓨터에 업로드하여 가상 현실로 뛰어들었다. 껍데기만 남은 육신은 세포 단위로 분해되어 생체 컴퓨터의 재료가 되었다. 그 생체 컴퓨터는 가상 현실 네트워크 속에서 시뮬레이션의 연산력을 높이기 위한 부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후로 가상 현실에서 실행되는 시뮬레이션 곳곳에서 아주 무작위로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유령은 해를 끼치기는커녕 시뮬레이션의 진행 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고 개입도 하지 않았다. 단지 시뮬레이션의 자료를 수집하듯이 복사해 가면서, 동시에 어떤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를 가상 현실의 개발자가 만든 이스터 에그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오류 때문에 발생하는 메아리 같은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이는 현실을 더 완벽히 대체하기 위한 우주를 만드는 가상 현실의 신이라고 떠들고 다녔으며, 또 다른 이는 메시지의 내용과는 반대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외부 세계의 공격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 메시지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 여태 공상이 가지는 현실에서의 존재론적 지위는 모래 위에 지어진 누각에 불과했다. 공상의 세계는 원래 뉴런의 연결망과 컴퓨터 메모리, 종이 같은 매체에 정보의 형태로 존재했고, 마치 홀로그램처럼 구체화는 오로지 의식의 정신과 상상력에만 의존했다. 즉, 모든 이는 현실에 있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각자 다른 허구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상적 존재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 다른 존재론적 지위를 가졌다. 이는 허구적 세계가 인간의 모든 감각을 속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였다. 게다가 근본적인 의문은 항상 우리 곁을 맴돌았다. 추상적, 사변적 세계에 있는 관념을 물리적 세계로 끌고 내려온 순간, 관념과 실체 사이의 괴리는 다시 자라나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허구적 실재론은 그토록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우리의 가상 현실은 개체의 감각을 완벽히 속이고, 새로운 우주를 창출한다. 모든 상상은 실재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물리적 육신이 존재하는 현실을 일차 세계라고 본다면, 허구의 세계는 이차 세계다. 지금껏 이차 세계는 일차 세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일차 세계에 실재하는 존재의 생각을 기반으로 이차 세계가 제작된다. 그러나 우리의 가상 현실은 일차 세계로부터 독립된 세계로서 기능한다. 가상 현실은 현실에서 분리되어 허구로부터 수많은 가능 세계를 생성한다. 심지어 가상 현실을 일차 세계로 삼는 이차 세계, 즉 현실에 의존하지 않는 완벽한 허구 세계도 존재할 수 있다. 현실의 추상과 사변을 대변하는 것이 가상 현실이듯, 가상 현실에서의 자체적인 추상과 사변이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이는 물리적 현실에서 추상적 세계를 만들었듯이, 반대로 추상적 세계에서 현상계를 창조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도 암시한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재귀적으로 반복될 잠재력이 있다. 현실과의 고리를 끊으면 우리는 마침내 무한으로 발산한다. 따라서 가상 현실은 실존만으로 이루어졌던 우주를 관념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도구이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는 불변해 보이는 우주를 개척할 수 있다. 무수히, 무한히.‘

제2부

ω + 8. 연속체

무한은 사변적인 개념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우주라는 현상계에 직접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의 조그마한 머리로는 일면조차 상상하지 못하니, 쉽사리 범접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3차원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고차원의 일반화된 도형, 초입방체도 현실에 존재할 수 없고 머리로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지만, 어느 축에 투영하거나 차원을 낮추어 표현해 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무한은 완전히 성질이 다르다. 규칙성이 있는 무한이라면 압축해서 표현하거나, 다른 개념과 기호에 빗대거나, 비유적인 표현, 문학적인 표현으로 불완전한 묘사는 가능하다. 사실 창공을 누비는 새를 잡아 새장에 가두듯 우리가 가진 이해의 수준으로 열화시켜서 끌고 내려오는 것이지, 그것을 묘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한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연속성은 무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구축한다. 현실의 연속적인 속성과 시공간 연속체를 이해하는 것은 무한을 받아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무한을 이해하지 못함에도 그것을 우리의 세계관에 도입한다면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우주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양식이 없는 무한은 아예 거론조차 힘들며, 우리가 수학과 언어로 다룰 수 있는 무한은 결국 패턴이 있어서 문자나 기호로 압축이 가능한 무한뿐이다. 다행히 우리가 가진 의미들, 이런 것들은 패턴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러나 무한한 가능성의 구현은 결국 우리의 인지를 벗어나 자유롭게 거니는 무한이 필요하다. 모든 가능성이 어떤 패턴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누군가가 무한을 신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에 가져다 놓은 것은 과연 우연이 아니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무한이 단순히 논리로만 존재하는 것은 큰 낭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무한이라는 개념을 사변계에서 현상계로 옮겨오기 위해 아주 큰 노력을 기울였다. 수학과 논리학, 물리학과 언어학에서 비약적인 발전은 우리의 무한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발전에는 한계가 보였고, 우리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신기루 같은 무한을 결단코 잡을 수 없었다. 우리 우주에 숨겨진 공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먼 옛날 수많은 공상과학 작가가 창조한 개념을 학계에서 발명하거나 실제로 발견한 것은 과학사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거나, 그것들을 거스르고 우회할 수 있는 공간,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고차원의 공간은 그런 장르의 소재에선 꽤 자주 등장하는 종류였다. 소설 속에서는 그런 공간을 통해 광속을 뛰어넘어 이동하고 통신하며, 과학과 물리학의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는 일들을 실현할 수 있었다.

최초의 숨겨진 공간은 블랙홀에서 찾을 수 있었다.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고 여겨졌지만,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이 발견되었고 곧 그 블랙홀이 우리 우주와 다른 공간, 일종의 다른 우주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우주의 성질은 우리 우주와 판이하며 공상 과학 소설 속에서 묘사한 고차원의 공간과 매우 비슷했다. 다만 유기물이나 큰 물질은 블랙홀을 넘어 우리 우주와 다른 우주의 경계를 통과하기 어려웠고, 입자 크기의 컴퓨터와 정보만이 넘나들 수 있었다. 그 정도 수준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숨겨진 공간은 블랙홀 너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블랙홀에서 얻은 지식으로 세운 이론은 그 속의 우주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했고, 이 시뮬레이션은 블랙홀 속의 우주와 아주 흡사한 성질을 보였다. 계산 과학, 수학, 이론 컴퓨터 과학에서의 발전은 단순히 그 발견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블랙홀 속의 우주와 전혀 다른 법칙이나 방식으로 구현한 시뮬레이션도 특정한 조건을 만족한다면 그와 비슷한 성질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학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블랙홀 속 우주, 그리고 그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시뮬레이션, 가상 공간을 '추상 공간'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세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은 뒤로 하고, 결과적으로 무한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 아니었다. 베어먹으면 과즙이 터져서 흘러내리는 새빨간 사과만큼이나 실존적이다. 그리고 현실로 다가온 무한을 아주 정교하게 포함한 새로운 수학 체계와 공리계를 고안했다. 그중 하나의 결과로 우리는 무한이라는 개념과 과정을 한 요소로서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셀 수 있는 형태이고, 무한하다. 특정 관점에서 바라보는 언어는 중첩이라는 구조를 통해 문법이라는 규칙을 만족하는, 서로 다른 문장을 무한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유한한 우주라는 병 안에 갇힌 돛단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유한한 조합의 문장을 사용했다. 우리의 언어는 무한한 잠재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하고 유한 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새로운 무한의 언어는 이런 비관적 관점을 넘어서 족쇄를 벗어던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우리는 새로운 단어와 어휘, 문장 구조, 문법을 가지는 인공 언어를 설계했고, 곧 그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추상과 개념, 사변, 문학의 등장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성질을 반영하기 위한 문자도 새로 등장했다. 이것은 불과 바퀴, 종이와 인쇄술 이후 가장 큰 혁신이 되었다. 트랜지스터, 월드 와이드 웹, 양자 컴퓨터와 워프 엔진도 이를 따라오기 어려웠다. 그나마 가상 현실 정도가 비견될만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일들은 무한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 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가능케 해준다. 무한은 곧 계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도 계산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단순히 우리가 일반해를 찾지 못하거나, 증명하지 못했던 난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계산 불가능한 함수들이 우리가 거머쥔 무한의 칼 앞에서는 우리의 한계를 정하던 괴물의 모습에서 순한 양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것들은 수학에서 끝나지 않았고, 당연히 우리의 다양한 형식 과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의 뇌는 생명공학적으로도 눈부시게 발전함과 동시에 컴퓨터와 거의 합일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아주 먼 과거의 순진한 뇌를 가지고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새로운 수학과 언어의 패러다임은 우리의 사고 체계에도 영향을 직접 줄 수 있었고, 심지어 이 뇌-컴퓨터조차 이전과 차원이 다른 경지에 발 디딜 수 있었다. 현실에서의 유한한 시간 내에 추상 공간에서 무한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는 필연적으로 발견되었다. 유한한 세계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 최적화 문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른바 전수조사법(Brute force)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해법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며 만들고 발견하는 모든 문제 풀이, 알고리즘, 방법론에서 효율성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고상한 취미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드디어 우리는 칸토어라는 메시아가 우리를 위해 준비한 낙원에 도달했다. 혹자는 우리가 진정으로 무한을 이해한 것처럼 보이는 허상에 취해 낙원이 아니라 나태의 지옥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었지만, 이는 금세 뭇매를 맞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자의 말은 결코 헛된 외침이 아니었다.

추상 공간을 도입해도, 결국 우리 우주 안에서 이 이론을 완성한 것은 아니라는 증명이 어떤 물리학자와 수학자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런 주장은 초기에는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점점 수많은 학자에게 지지를 얻었다. 실제로 우리는 추상 공간을 외부의 장치로 계속해서 사용해 왔지만, 우리의 우주를 추상 공간을 포함하여 재정의한다면 확장된 우주에서 또다시 닿을 수 없는 무한이 존재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 무한 연산을 이론에 추가해서 논리를 전개하다 보면 결국에는 계산할 수 없는 문제, 증명할 수 없는 명제, 혹은 도달할 수 없는 무한이 어딘가에서 유령처럼 불쑥 나타난다. 다시 더 높은 차원의 무한을 도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모두가 예상하듯이 다시 똑같은 양상이 반복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결정적인 문제는, 이 과정 자체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무한의 축복은 우리가 빠져나올 수 없고, 발버둥 칠수록 끌어당기는 늪 같은 저주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저주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질서 이상의 혼돈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의 메시아가 예언한 '절대적 무한'의 존재성을 가리키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적 무한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든 없든 모든 무한을 뛰어넘는, 문자 그대로 절대적이고 무한한 무한을 상정한다. 장대하면서도 숭고한 정의를 생각만 해도 몸을 파르르 떨렸다. 진절머리 날 정도의 동어 반복과 순환 논리, 모호한 언어로 감조차 잡기 힘들게 표현되는 이 개념은 지극히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이어서 아직은 우리의 상상에만 의존한다. 무한의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은 절대적 무한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역설로 인해서 그 존재가 부정되어야 했으나, 이제는 우리를 이끌어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절대적 무한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무한, 예컨대 초한기수(알레프) 계층의 끝과도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수학적, 언어적 정의와 이론으로 만들어낸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러니 절대적 무한을 좇는 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으며, 심지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는 모두가 예견하다시피 자기 파괴적이다. 무한의 저주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절대적 무한을 찾는 여정의 한걸음 한걸음에 끝없는 고통이 영원히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무한을 이해했다고 여기는 순간, 새로운 무한이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그것이 무한의 본질이다. 무한은 순수한 가능성을 상징하면서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성도 동시에 표상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무한을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무한을 이용한 것조차 아니었다. 그저 무한이라는 우주의 한 귀퉁이에 있는 행성의 백사장에서 자그마한 모래성을 짓고는, 우리가 세상을 정복했노라고 거들먹거린 것이다.

제2부

14. 창발

나는 새롭게 발견된 블랙홀을 직접 조사하는 탐사대의 일원이었다. 당시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블랙홀을 탐사하던 도중, 외형이 곤충과 무척 흡사하고 생태와 생리마저도 닮아 있는 외계 종족과 우연히 조우했다.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우주 이곳저곳에서 찾아온 종족으로 가득했고, 개중에는 과거 고향 행성의 생태계와 비슷한 생물들도 많았기 때문에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물리법칙은 전 우주에 걸쳐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생명이 이 우주 어디에서 탄생하더라도, 생물의 구성과 구조는 비슷할 확률이 높으리라고 생각한다. 곤충형 외계인들도 세포라는 작은 단위로 이루어져 신경이 존재하였고, 그 신경다발이 뇌와 신경삭으로 모여 중추신경계를 형성했다. 고도로 발달한 신경이 모여 뇌와 비슷한 기관, 척수와 비슷한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해부학적으로 봤을 때는 곤충보다는 오히려 나 같은 척추동물과 닮아있었다. 재밌게도 그들은 키틴질의 외골격도 가지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신경을 보호하는 내골격도 일정 수준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꽤 독특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들의 의사소통은 주로 페로몬과 유사한 화학물질을 방출함으로써 성립한다.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체내에 내장되어 있고, 그런 물질을 내뿜음으로써 제 뜻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나도 그러했듯이 처음에는 원시적인 형태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언어도 나를 포함한 다른 종족의 언어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송신자는 형태와 방위, 그리고 농도를 전부 고려하여 자신의 의향을 페로몬과 페로몬을 내뿜는 행위 그 자체에 심는다. 심지어 화학물질의 분자량에 의한 확산 속도를 고려하여 페로몬을 분사하면, 수신자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방출자의 의도를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체계였다.

나는 언어의 본질이 불연속적이고 이산적임을 굳게 믿는다. 물론 내 종족이 사용하는 음성 언어 역시 물리적 형태는 매질을 통해 연속적으로 에너지가 전달되는 파동이다. 우리의 인식과 사고는 그러지 못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불연속적 단위인 음소가 불연속적 법칙인 문법으로 조립되어 단어, 문장을 구성하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는 불연속적인 면이 강하다. 나는 이것이 언어가 가진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했으며, 우리의 사고 그 자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여겼다. 우리는 그 성질을 가지고 일반화, 범주화와 추상화라는 무기를 얻을 수 있었으니, 이는 몹시 중대한 이점으로 작용하는 바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우리는 대신 현실에 있는 삼라만상에 대한 표현의 정확성을 잃었다. (사실 잃었다기에는, 원래부터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고 표현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반면 페로몬 분자가 이루는 영향력장(場)의 패턴과 구배를 인식하는 특질로 인해 연속성이 그들의 언어에 내재화되어 있으므로, 나는 그들의 사고 체계와 문명도 그것에 맞게 진화했다고 느꼈다. 그들은 현실을 '거의' 있는 그대로, '거의' 완벽한 정확도와 해상도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연속적인 사고방식은 사물을 규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식하리라. 그들은 아주 미묘한 페로몬의 변화를 통해 거의 모든 사물과 사건에 대해 개별적인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같은 사물이어도, 달리 구분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물이어도 그 사물의 변화하는 상태나 환경에 따라 각자 다른 어휘가 그들의 샘에서 분비되었다. 가령 그들의 눈앞에 금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정면에서 보는 금괴와 45도 비튼 시야에서 보는 금괴를 그들은 다르게 부를 수도 있다. 심지어 그들은 금괴가 같은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시간의 절편마다 다르게 간주한다. 시간에 따라 공간에 확산하는 페로몬을 인식하는 능력에 더불어 이런 사고방식은 그들에게 시공간 연속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허락했다. 우리가 디지털 컴퓨터와 같다면, 그들은 아날로그 컴퓨터처럼 보였다.

물론 그들의 언어도 실수(實數)처럼 완벽히 연속적인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예시는 그들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극단적인 사고 실험에 가깝다. 생물학적으로는 그들이 만들 수 있는 페로몬 종류와 그를 인식하는 수용체, 그리고 신경계의 뉴런은 이론적인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인 사물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개수는 셀 수 있고, 유한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무한한 어휘를 만들 수는 없다. 비가산 유한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유한하다면 오로지 가산적이다. 그러므로 그들 또한 이 우주에 종속된 존재로서 불연속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컨대, 그들이 여러 물질을 섞어서 한꺼번에 내뿜는 경우가 있다. 이 화학물질들의 조합은 다양한 페로몬 칵테일을 조성한다. 그들은 칵테일을 분리 없이 중첩된 상태 그대로 인식하기도 한다. 칵테일을 구성하는 각 화학물질의 조합과 구성비에 따라 그들의 '발화'가 달라지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이 인식하는 칵테일의 구성 성분을 개별로 인식하는 의미와 칵테일 전체를 한 번에 인식하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특정 사물이 포함된 관용어구를 사용할 때, 그 사물을 더 이상 연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체내에서 생산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수용체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칵테일이 조합되는 비율이 아무리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결국에는 칵테일이 취할 수 있는 경우의 수와 여러 칵테일이 구분되어 서로 다르게 인식될 경우의 수는 유한한 숫자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언어는 생존과 본능, 자연에 대한 의도를 다수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훌륭히 수행했다. 어디에 식량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고, 어디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격화된 정도가 얼만큼인지, 송신자가 내뿜은 페로몬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여러 수신자가 통과하여 결을 읽음으로써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이는 곧 서로의 정신을 동기화하는 측면에서 훌륭한 방식이었다. 특정한 페로몬은 현재 내분비계에 흐르는 호르몬(혹은 그와 비슷한 물질)과 중추신경계의 상태를 아주 작은 오차로 반영하여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충실히 전달하기 때문이다. 감정에 국한되어서는, 일종의 보편적인 기본 어휘가 그들 내부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느끼고, 서로 감정적, 정신적 동기화가 손쉽게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도 일반화와 추상화의 렌즈를 거쳐 세계를 바라본다는 사실은 자명했으나, 그 렌즈의 크기가 달랐고 결국 태생적 한계에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음소같이 뜻을 구별해주는 최소 단위를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페로몬 칵테일이라는 연속체를 인식하다 보니, 그들도 그 연속체의 한 원소가 대변하는 의미와 그 원소에 가장 가까운 다른 원소가 대변하는 의미 간의 구분은 존재해야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와 비슷하게 근본적으로는 연속적인 의미의 불연속적인 구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체계와 구조는 판이해서, 기본 단위로 더 큰 단위를 조합하는 계층적 구조보다는 모든 원소가 수평적인 분절만을 이루었다.

문자가 탄생하기 전, 그들의 어휘는 체계화되기가 어려웠다. 농도와 방출 속도, 방출 순서와 대기 중에 부유하는 시간조차 의사소통의 수단에 포함되며, 이런 요소들의 조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문자가 탄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 있는 사회적 합의와 맥락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어느 분절이 어느 의미를 담는가가 모호했으며 개체마다 어렴풋이 공유되는 것들이 기억으로만 전해 내려온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의 기억력은 매우 좋아서 기억할 수 있는 어휘나 표현, 때에 따라서는 문장 이상의 의미를 품은 글의 숫자가 많았지만, 한계는 여실히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방언, 혹은 언어는 지역이 달라짐에 따라 훨씬 촘촘하고 세밀하게 달라져서, 방언연속체가 진짜 문자 그대로 '연속체'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는 형태를 보였다.

게다가 구전의 한계를 보완할 문자는 연속적인 의미를 담아야 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출현조차 까다로웠다. 초창기에는 모든 사물을 본떠 만든 상형 문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와 사고 체계 특성상, 우리에게는 하나의 사물도 그들에게는 각양각색으로 구분되니, 상형 문자나 그림 문자는 효율적이지 못한 까닭에 금방 사장되었다. 그 뒤로는 표음 문자에 비유할 수 있는 표향 문자, 혹은 표어문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진 여러 언어 중에 내가 만난 이들이 사용하는 문자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문자치고는 제법 직관적이고 간단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그들의 분비샘에서 나올 수 있는 페로몬의 종류가 음소 문자에 대응하며 나는 이것을 향소 문자라고 불렀다. 페로몬의 농도, 변화량, 위치, 형태 등의 공간 및 부가 정보는 향소 문자 근처에 특정한 기호를 찍어 나타내고, 그런 기호와 향소 문자의 조합 여럿을 다시 묶어서 칵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럼에도 문자로는 담아낼 수 없는 언어 정보는 너무나 많았다. 칵테일에 섞여 있는 조합 물질의 비율은 얼마인지, 확산 속도는 얼마이고 기체 분자가 공기 중에 어느 정도 분포되어 있는지, 이런 요소들은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호로만 그릴 수 있으므로 그들의 모든 발화를 전부 반영할 수 없었다. 따라서 문자의 표현력은 그들의 발화 언어에 비해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므로 기록하는 목적 외에 의사 전달을 위해 글을 작성하는 것은 때로는 비효율적이고 번거로운 수단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문자를 사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그들의 뜻을 부정확한 매개에 의해 한번 희석되어 전달되는 것이다.

문자는 사회적 규약을 넘어서 언어의 고차원적인 측면인 추상화와 범주화를 더 가속해 주는 역할도 있었다. 문자와 언어의 괴리를 메울 수 없던 그들의 선조는 문자 문화를 거부하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의 어휘의 집합에는 한계가 있었고, 시간이 흐르고 사회와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들의 발화와 어휘의 대응이 변화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들의 기억력은 거의 초월적인 수준이었지만, 어떤 페로몬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모든 어휘를 전부 기억할 수는 없었다. 기억의 인출은 사실상 컴퓨터와 다름없었으나 문제는 그 의미의 '할당'에 있었다. 어떤 의미가 어떤 페로몬 칵테일에 할당될지는 사회와 개인이 변화하는 바에 발맞춰 같이 변화하고야 마는 것이다. 또 문명이 고도화되면서 새로이 등장하는 기술, 개념이나 용어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의미의 기반이 되어줄 문자가 거부될수록 사회적 맥락과 합의는 지체되고 원거리 통신도 힘들어질뿐더러, 결국 발전이 저해되며 악순환이 성립된다. 이런 연유로 나는 문명의 발전이라는 면에서 그들이 문자 문화와 글로 인한 가속화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최초로 조우했던 이가 친분을 쌓고 나서야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나를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그는 몹시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완전히 밀폐된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방호복을 이루는 물질은 상온에서 승화하지 않으니 내게서는 미생물은커녕 아무런 분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광수용체에는 나의 형체가 감지되었으나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으니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나는 그들의 신화나 개념에 등장하는 죽음의 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거니는 것 같았다고. 다행히 그들은 위협적인 생김새와는 달리, (물론 오로지 우리 입장에서의 편협한 시각이다) 온순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티는 나지 않았지만,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우리의 손짓과 발짓을 금방 적응해서 의사소통이 최소한이나마 가능했다. 다음에는 바로 내가 지니고 있던 물건들에서 나오는 냄새는 맡을 수 있어서 약간이나마 경계심을 풀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정말 우연의 일치였지만 인간의 체취 중 일부 성분의 분자 구조가 그들의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페로몬 중 하나와 매우 흡사했다. 정말로 운이 좋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언어의 특성을 연구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조악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성능이 보장되는 번역기도 만들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직접 연구하여 가상 현실에 업로드된 정보를 제외하고 이제는 그들 종족을 은하 사회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이용한 감정 공유를 통해 집단적인 공상과 환상 속에 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자신들의 종족을 제외한 모든 종족이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보였다고 하는 그들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페로몬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진 그들은 다른 이들의 감정을 그대로 읽을 수 있어서 비언어적 표현이나, 심지어 절절한 감정이 담긴 글과 문장도 그들에게는 정서의 동요,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몇몇이 나의 소개로 은하 사회에 진출해 보았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들은 금방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정말 안타깝게도 건강을 잃기도 했다. 그들은 유기적이고 고차원적인 사회적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반대로, 사람들도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내 가설을 증명하는 사례를 발견해서 흥미로웠지만, 사라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은 몹시 씁쓸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피나는 설득 끝에 그들의 두뇌와 신경계를 양자 컴퓨터로 전산화하는 작업을 미리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그 덕에 그들의 신경 체계를 연구하고 구현할 수 있었으며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에서나마 그들과 대화하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언어의 본질과 연속적인 언어에 대한 탐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블랙홀 탐사를 때려치우고, 페로몬 언어와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수년에 걸친 탐색 끝에 마페이 2 은하에서 발전된 문명을 이룩한 이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생김새는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종족과 비교해 보아도 이질적이었다. 가상 현실 게임에서 처음으로 거대해진 박테리오파지를 목격했을 때의 기분을, 그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연에서 진화한 생물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기계 부품으로 조립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들은 상당히 거대한 몸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몸통 전체가 커다란 판을 닮아있었다. 몸통의 대략적인 모양은 직육면체였는데, 정면에서 보았을 때 몸통의 크기, 즉 가로 폭과 높이에 비해서 세로 깊이가 비교적 얇았다. 몸통에는 한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가 붙어있었다. 팔은 몸통 양쪽에 붙어서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팔과 몸통에 삼각형 형태의 얇은 막이 붙어있었다. 다리는 몸통의 양쪽 하단에 한 쌍씩 자리했다. 정확히는 몸통의 하단 모서리 두 부분에 붙어서, 광대한 판과 같은 몸체가 앞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버텨주었다. 전체적으로 캔버스를 이젤에 얹은 듯한 기묘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외계 종족이어도 그렇지, 생물이 이런 형상을 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든 점은 처절히 동감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들이 그렇게 우리에게 신기한 모습으로, 심지어 생물이 아니라 사물을 연상케 하는 형태를 가지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막과 몸통, 배와 등은 아주 다양한 빛깔의 색을 표현할 수 있었다. 단순히 주변 환경을 모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지로, 그들이 생각하는 시각적 정보는 대부분 표현할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의 피부 표면에 지닌 특수한 발광 세포를 통해 가능했는데, 사실상의 생체 전기로 동작하는 발광 다이오드나 다름없었다. 그런 세포가 몸 전체와 사지를 비롯한 많은 부분을 뒤덮고 있었으니, 그들의 몸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소자를 가져서 엄청난 해상도로 영상을 표현할 수 있는 스크린으로 간주해도 무방했다. 다만 그들도 열역학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체온이 꽤 높은 편이었다. 다행히 그들의 행성은 평균 기온이 제법 낮았으며, 체내에 열전도율이 높은 금속 함량이 많았다. 이에 더불어서 체액과 공기 순환으로 발광 세포의 열을 식혀주는 메커니즘이 발달했다.

그들은 음성을 낼 수 있는 기관이 페로몬 언어를 구사하던 종족처럼 거의 없었다. 대신 몸 전체의 광학 무늬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종족이었다. 자신들의 몸을 화면으로 삼아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모두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의 광수용체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 범위 너머의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도 감지할 수 있었으며, 발광 세포는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색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기억을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 페로몬 사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단순히 영상뿐만 아니라 빛의 밝기나 영상의 색조 등 일종의 부가적 요소를 포함하여 그들의 의사를 표현했다.

나는 그들이 페로몬 사용자들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혼재한다고 생각했다. 공통점이라함은, 이들도 언어의 분절적인 기본 단위를 정의하기가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페로몬 냄새 분자와 발광 세포가 대응되기는 했지만, 그들이 어떤 계층적 구조를 이루어서 추상화를 거치는 것은 아니었다. 세포들은 그저 화면의 영상을 구현하는 화소, 픽셀에 불과했다. 또한 냄새의 변화처럼, 그들은 빛의 연속적인 변화를 통해 연속적인 의미를 전달했다.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더라도, 얼마나 밝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진폭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 또한 그들의 감각기관으로 감지한 모든 것을 의미의 가공 없이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므로, '거의' 완벽한 해상도로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들도 엄청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고,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능력은 거의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두 종족 간의 차이는 특히 감정이나 내면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때가 가장 특징적으로 발현되었다. 페로몬 사용자들은 생리적으로 공유하는 기본 어휘들이 있었으므로, 그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상응하는 페로몬 조합을 분비하기만 하면 되었다. 반면 이들은 사랑, 감사, 분노 같은 감정을 표현하기가 까다로웠다. 초기에는 현재 느끼는 감정과 연관된 임의의 기억, 혹은 지어낸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면 어떤 이가 다른 이와 교감을 나누는 장면, 분노는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런 추상적인 관념을 표현할 때는 장면의 등장인물로 본인을 이용해서는 안 되고 다른 가상의 인물을 상상해서 그려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발화자의 의도가 어떤 일을 목격한 기억인지, 지어낸 가공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알려주고 싶은 것인지, 그런 선택지 사이에서 판별하기가 모호하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들은 그래서 특정 기억을 회상할 때는 몸 한구석에 어떤 기하학적인 문양을, 감정을 표현할 때는 또 다른 문양을 표시하는 사회적 규약을 만들었다. 당연히 이런 것들도 미봉책이었는데, 그런 문양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간단한 것들이어서 그 문양 자체가 실제로 했던 경험 속에 포함되는지 아닌지 분간이 힘든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문양들은 점점 복잡해졌으며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에 따라 문양도 달라지고, 문양의 위치도 달라졌으며, 형식조차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보통 그들의 언어 체계에서 일종의 방언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모든 의사소통은 태초부터 그림 문자나 상형 문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모든 언어적 행위에서 기표와 기의가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발생하는 더 큰 문제는 현실이나 물리적 영역에 근간을 두지 않는 추상적 개념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불운, 정의, 자유 같은 것들은 당최 어떤 경험이 그것들을 대표할 것인지 불명확했다.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영상에 대해서조차 개체 간의 의견이 분분할진대, 그런 개념들이 시각적 정보, 즉 어떤 서사나 이야기로 표현할 때의 불확실성은 어떠하겠는가? 그들은 추상적 개념을 표상하기 위해 기존에 감정을 표현한다고 밝히는 문양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특정 사물이나 현상을 묘사하는 장면이 아니라 기하학적으로 복잡한 임의의 패턴 그 자체를 특정 개념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하자는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그들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복잡한 시각적 패턴의 가짓수는 전부 소진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패턴은 페로몬 칵테일과 마찬가지로 할당의 문제와 수평적인 분절의 문제가 있었다. 그들의 기록에 따르면, 두 가지 문자 체계가 경쟁했던 것처럼 보였다. 한 체계는 페로몬처럼 모든 개념을 연속적으로 분할되는 집합의 원소에 할당했다.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패턴의 스펙트럼에 그 개념들을 빼곡히 할당하고, 새로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사이사이를 채워 넣는다는 말이다. 새로운 개념의 위치는 이미 존재하던 개념과 가까운 위치에 할당할 것이고, 그러면 그 의미들은 점점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문화적 차이에 따라서 다양한 개념의 발전 방향과 그 속력이 다를 테니 패턴의 스펙트럼에서 어느 부분은 굉장히 촘촘하고 다른 부분은 개념의 분포가 상대적으로 희박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런 방식으로는 모든 개념이 균일하게 패턴에 대응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의사소통 중에 가까운 개념끼리 잘못 인식될 오류의 확률은 점점 상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휘의 스펙트럼상에서 개념을 균등한 간격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는 큰 사회적 비용을 요구했다.

이에 대응하는 체계는 쉽게 구분할 수 있는패턴들에 개념을 할당하고, 그 패턴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개념을 표현했다. 그리고 다시 조합들이 모여서 새로운 조합을 이루며 계층적인 구조를 형성해 나갔다. 이 체계의 대전제는 가장 하위에 있는 계층, 가장 간단하고 원초적인 개념은 반드시 구분하기 용이한 패턴으로 할당되어야 했다. 그런데 구분하기 쉽다는 것은 애매모호하지 않은가? 어디까지가 구별하기 쉽고, 어디까지는 어려운 것인가? 그것이 이 체계의 핵심이었다. 심지어 원초적인 개념의 목록, 집합조차도 정의하기 나름이었다. 이 체계의 요소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바꾸어 말하면 내가 연신 강조하는 추상화와 범주화의 과정이었다. 한 체계가 모든 면에서 반드시 우월하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결국 살아남은 것은 후자의 체계였다. 그들은 결국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는 단계에 다다라서야 기표와 기의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언어의 의미론적 닻을 만들어냈다. 언어적 표현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개념, 정신적 통일성을 이루어낸 것이다. 페로몬 사용자들과 달리 실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창조한 추상적 기호 체계를 통해 달성했으므로 그들은 문자 문화와 언어의 발달이 매우 원활했다. 오히려 우리보다 문자에 대한 관념과 이해가 훨씬 뛰어났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들의 의사소통 방식 자체가 문자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그들 중 몇몇은 나의 절친한 친우가 되었다. 어떤 종족에 대해서 선입견을 품고 싶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그들은 아주 유쾌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은하 사회에서 엔터테이너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종족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그들의 예술성과 심미성에 대한 감각은 다른 종족의 감탄을 사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에 거장으로 여겨지는 예술가가 즐비했다. 색에 대한 감각도 무척 뛰어나서, 가상 현실 디자인이나 우주선 도색업계의 점유율을 오 할 이상 차지할 정도였다. 실용성과 예술성의 논쟁은 그들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종족 자체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이 곧 예술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전위적이라며 자기들끼리도 용납하기 힘들어하는 작품도 다른 종족들의 찬사를 사기 십상이었다. 재밌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무얼 해도 좋은 감상을 받는다며,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런 미학과 빛에 대한 감각 때문인지 그들은 철학적인 통찰이 뛰어났고, 광학을 비롯한 물리학 연구 방면에서도 훌륭한 성취를 일구어냈다. 다만 내 의견을 조금 피력해 보자면, 그들이 언어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면 선천적인 감각만으로 이런 업적들을 온전히 이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지능과 정신을 포함하여 우주의 모든 것은 유한하다. 인지와 인식은 유한한 뇌와 신체에 기반하는 까닭에 모든 언어는 물리적인 한계를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의 모든 언어는 유한하며 순수하게 연속적일 수는 없다. 언어는 그저 연속과 불연속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할 뿐이다. 그 스펙트럼 사이에서 어떤 지점이 최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그 균형을 잘 유지하는 부분에 있었다. 다만 어떤 종족은 태생적인 한계를 이유로 그러지 못했고, 어떤 종족은 우리와는 다른 지점에서 시작했지만, 그들 나름의 유리한 곳에 안착했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의 언어를 포함하여 지금껏 알려진 언어 전부가 최적점이 아니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우주를 이해하여 내면에서 재현하고 정신을 확장하는 데에 최적화된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우주의 조물주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비가역적으로 흐르고, 물질이 국부적으로 집중되며, 존재가 유한한 세계에서는 추상화와 일반화가 중요하다.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추상화와 일반화는 여러 단계에 걸쳐서 계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그 추상화와 일반화가 일어나는 계층은 본디 연속적일 수 없어서 불연속성은 필연적이다. 현실의 본질이 연속과 가깝다고 해도,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들이 창발하려면 반드시 그 본질의 속박에서 탈피해야 한다. 우리는 절대, 누구도 현실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이해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현실 그 자체, 두 번째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관측,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 내면에 자리하는 주관적인 내적 모형이다. 내적 모형을 아무리 현실의 관측을 통해 현실과 가깝게 다듬어도 그것을 재가공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그것은 현실을 복제하고 모사할 뿐이지 큰 의미는 없다. 앞서서 우리는 현실의 실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 말은 누군가는 저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수 있다. 오히려 현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적 모델을 이용하여 재해석하고, 재구성해야 단순히 이해하는 것을 초월해서 그 너머의 가치를 독창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과 분리되어야, 자연을 곧이곧대로 이해하지 않아야, 우리는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유한한 세계에서만 해당 법칙이 유효한가?

제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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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모은 곳을 떠올려보라. 그곳에서 내용이 똑같이 구성되는 이야기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각자 의미와 주제, 개념과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전혀 다르게 구성되었으면서도 비슷한 행간을 함축하고, 또 다른 이야기들은 아주 흡사하게 진행되면서 상이한 골자를 가진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야기의 세계와 의미의 세계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두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는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고 내면에서 재구성하는 이가 담당한다. 그때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감상은 두 세계, 두 집합 사이의 사상(寫像)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이야기의 집합은 모든 의미를 전부 표현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정제된 질문으로 기술해 보자면, 어떤 이야기로도 표상할 수 없는 의미나 개념이 존재할 것인가?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재구성한 이야기의 감상은 모든 의미를, 빠짐없이 망라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야기들은 불변하는 의미와 개념의 영원한 상징이 된다.

모든 이야기가 어지러이 사방으로 흩어져있다. 이야기는 투명한 막으로 이루어진 구슬에 담긴다. 완벽히 외계와 분리되어 고립계를 이룬다. 각 구슬 속에는 입자들은 변화하는 시간에 맞춰 정해진 형상을 취한다. 한 구슬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결말에 도달하면, 모든 입자는 폭풍에 휘날리는 모래처럼 분해되어 초기 상태로 돌아가고 이야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모든 이야기는 절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을 거듭한다. 모든 이야기는 자신의 의미를 최적으로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차지하므로, 각 구슬의 크기는 다양했다. 어떤 구슬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표상하기 위해 관측 가능한 우주가 그대로 담겨있기도 했고, 다른 구슬은 원자의 크기만 한 공간에서 전개되는 서사를 담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이야기끼리는 시간축도 달랐으며, 어떤 이야기는 내부에서도 다양한 세계선을 지니고 있었다.

사서가 옮기기 전까지는 책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듯이, 그의 도서관은 불변하는 형태로 고정되어 아주 정적인 장소였다. 우주 안에 자리한 모든 이야기는 이 우주에 담길 때 배치된 그 자리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않았다. 구슬끼리 부딪히는 일도 없었고, 서로 간섭하는 일도 없었다.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구슬은 그야말로 절대적 단절을 상징했다. 모든 개념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의미는 스스로 완결성을 지닌다는 그의 의도가 반영된 탓이리라.

그는 끝없는 여정의 다가오지 않을 마무리에서 자신의 우주를 관조한다. 그는 배치나 배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우주에 이야기를 보관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우주가 거시적인 면에서 질서보다는 혼돈에 가깝다고 느꼈다. 혼돈과 질서는 상대적인 개념이고, 관점에 따라 변할 수 있어서 그는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혼돈과 질서를 가르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도 명확히 정의해서 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는 오로지 직관이라는 감각에 의지하여 나름의 질서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이야기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선험적으로 알고 있던 의미와 감정은 그가 자신의 우주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과 사뭇 달랐다. 이야기를 우주라는 가방에 집어넣을 때 느꼈던 의미는 그 이야기 하나만을 바라보았을 때의 고립된 의미였다. 하지만 주위에 정렬된 다른 이야기들과 함께 그 이야기를 본다면, 이 우주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지는 않지만 기존의 의미에서 조금 다른 의미로의 길을 터주는 새로운 감상이 느껴진다. 이 감상법은 그에게 새로운 시야를 보게 해주는 렌즈가 된다. 그 렌즈를 통해 모든 우주와 이야기를 관조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기존의 것들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렌즈의 이름은 언어이다. 언어는 이산적이지만 의미는 연속적이다. 의미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이 불연속적인 이야기의 나열로 표현된다. 그가 원하는 질서를 위해 우주 전체의 이야기가 움직였다.

언뜻 보면 모든 이야기가 각자 제멋대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장면을 조금 더 멀리서 관찰한다면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주위에 영향을 주면서 운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주 전체가 정밀한 시계와 같다면, 모든 이야기는 마치 그 시계의 태엽이 정교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서로 맞물리면서 움직였다. 그렇게 어지러운 운동 속에서 톱니바퀴같이 움직이던 두 이야기가 제 궤도를 벗어나 충돌했다. 구슬이 깨지며 그 속에 있던 내용물이 방울져서 무중력 상태의 유체처럼 사방에 흩뿌려졌다. 이내 방울들은 서로 뭉쳐서 두 갈래의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두 물줄기는 각자 서로의 이야기로 분리되는가 싶더니, 나선을 이루며 엉켜서 서로 다른 색의 물감처럼 섞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 이야기가 각자의 성질을 버리지 않고 형태만 혼합되어, 하나의 나선에 두 색깔이 얼룩처럼 번졌다. 그는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분리하려 나선에 다가가려는 순간, 두 이야기의 나선은 곧 하나의 줄기로 융화되었다. 섞인 물감은 전혀 다른 색깔을 띠는 것처럼, 혼돈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두 이야기가 만나서 새로운 이야기가 창발하는 것이다.

그는 도서관 속 이야기를 아무리 섞어서 이야기를 다시 만든다고 해도, 새로운 이야기와 같은 주제를 가지는 이야기가 도서관 안에 반드시 존재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발생한 현상은 그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주위 다른 이야기들을 둘러보며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깨달았다. 구슬을 깨고 그 속의 이야기를 뒤섞는 것이다. 그러나 두서없이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섞지 않는다. 그는 이야기를 이색적인 조합으로 정리해 본다. 이렇게도 섞어보고, 저렇게도 섞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의미를 표상하는 이야기를 여럿 모아서 구슬을 깨고 융합한다. 그것들은 화학물질처럼 화합되어 새로운 개념을 창발한다. 여기에 더불어서 특정한 이야기들은 창발을 위한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작업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는 필연적인 지식을 각성한다. 결국 모든 이야기의 구슬을 파괴하고, 우주 자체를 하나의 구슬로 만드는 결말에 도달한다.

모든 이야기가 소용돌이치며 하나가 된다. 이야기의 덩어리는 넘실대는 바다가 되어 의미의 우주를 뒤덮는다. 이야기와 의미, 그리고 그가 만들어 낸 감상이 온 데 섞여 모든 관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다. 모든 추상적 개념이 이제 그곳은 그저 책이 정적으로 꽂혀있기만 하는 도서관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야기와 우주를 재현할 수 있는 추상의 극장이 된다. 도서관과 책, 저자, 문장과 단어가 모두 융합하여 하나의 통합된 총체를 재현한다. 도서관의 모든 이야기는 자기 자신으로 독립적인 존재이면서도 하나의 덩어리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구성하던 입자가 뉴런처럼 기능하고, 우주 전체가 하나의 뇌를 재구성한다. 그 뇌는 어떤 거대한 우주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우주는 개별의 이야기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제3부

0. 창조의 순환

우주가 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전수조사하는 시스템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 개의 우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압도되고 말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우주가 여러 가능성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 문제는 정확한 언어로 엄밀하게 정의하기도 전에, 머릿속에 가둬서 어렴풋한 형체를 이루기조차 어렵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는 뿌연 안개 너머의 불빛처럼 보이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다만 곰곰이 곱씹어본다면, 경우의 수는 미리 정해놓은 제한 내에서 어떤 조건을 만족하는 사례를 의미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주의 정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그리고 임의의 한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질문에 따라 문제는 단순해질 것으로 보인다. 매우 오래된 개념이기는 하나, 우주를 관측 가능한 범위로만 설정한다면 단순한 상업적 시뮬레이션만으로도 꽤 오래 걸리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우주를 사전적 정의처럼 시공간 연속체를 포함한 삼라만상의 총체라고 가정한다면? 심지어 물리적 실체가 없는 모든 관념과 추상, 사변과 사상을 포괄해야 한다면? 이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려고 하는 문제와 비슷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시스템의 제작자였다. 그는 시스템의 성립을 위해 말장난이라고도 볼 수 있는 눈속임 혹은 요령을 도입했다. '표현 불가능성'은 그가 이 시스템을 만들면서 설정한 대원칙이다. 표현 불가능성은 세계에 계층이 있고 높은 계층의 세계에서 낮은 계층의 세계를 만들 수 있을 때, 낮은 계층의 세계는 자신을 만들어 낸 세계와 동등하거나 그것을 초월할 수 없다는 성질이다. 표현 불가능성이 없다면 그의 시스템은 모든 우주가 시스템의 초기 조건과 같은 모습으로 수렴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계가 없는 순수한 창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하므로 자기 구현을 통해 무한히 같은 우주를 반복하는 순환에 빠지기 마련이다. 표현 불가능성이 있을 때, 시스템의 개체가 창조하는 우주의 다양성이 무한으로 발산하고 끝없이 창발한다.

그의 시스템은 제법 복잡한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시스템에 중요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일단 첫 번째로는 뇌가 필요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뇌가. 그것이 말랑말랑하고 축축한 유기체의 두뇌든, 양자 게이트로 만들어진 양자 컴퓨터 기반의 인공신경망이든 상관없었다. 그는 다양한 종족의 뇌와 신경 회로를 뭉치고 뭉쳐서 하나의 거대한 연결망을 구축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숫자의 뉴런과 소자로 구성된 그물망은 전기적 신호와 화학물질로 끓어오르는 죽과도 같았다. 죽 속의 뇌는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통일된 추상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뇌가 상상하는 세계가 모두 얽히고설키고 합쳐지며, 중첩되고 융합되어 하나의 가상 우주를 이루었다. 뇌가 가진 의식들이 기저가 되어 생성하는 이 세계는 추상과 개념으로 조성된 용광로 같았다. 그는 그것을 도가니(Crucible)라고 일컬었다.

그는 자신의 시스템이 우주를 제한 없이 구현하고 이해하게 만들고 싶었다. 따라서 그다음 우선순위는 비가산 무한, 연속성, 즉 그런 성질을 대표하는 실수 집합을 정확한 정밀도로 다룰 수 있는 아날로그 컴퓨터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런 성질은 우주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일종의 편법이 필요했는데, 그는 시스템을 살고 있는 우주와 동떨어진 공간에 제작해야 했다. 우주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물리법칙을 우회하거나 왜곡할 수 있어서 현실적인 제약이 풀려있는 듯한 고차원의 공간, 바로 초공간이었다. 여담으로 초공간을 지칭하는 용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해 왔는데, 최근에 와서야 초공간이라는 멋있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그전까지 무한한 수의 계산을 유한한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초계산(Hypercomputation)은 이론으로만 존재했으며, 초공간은 그런 개념을 실제로 가능케 했고, 그런 범위를 넘어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기도 했다.

물론 초공간의 쓸모를 발견했다고 해서 찬장에서 사탕을 꺼내먹는 것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공간으로 질량과 에너지를 보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초공간으로는 기본입자와 정보, 소량의 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현실 우주와 교류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질량과 에너지는 초공간으로 향하는 문을 통과할 수 없다. 또한 초공간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현실 우주와 다르다. 그러므로 앞서 이야기한 여러 학문적 발전과 초공간에 대한 이해가 발달함에 따라 초공간을 더욱 잘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은 초공간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만들 수 없다면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처럼, 가상 현실에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초공간을 구현할 수 있었다. 초공간은 일종의 책과 같다. 현실에서는 물리법칙에 저항하고 거역해서 마법을 부리고 우주를 빵처럼 찍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까마득하게라도 '상상'을 할 수 있다면 책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처럼 적어 내려갈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가진 책이 스스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줄거리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면? 여전히 책 속의 세계에서 물건을 꺼내거나 현실로 가져올 수는 없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그 책 속에서 나타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여기까지만 진행해도, 그가 원하는 대로 시스템이 동작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도가니라는 세계는 정밀한 해상도로 무수히 많은 지적 의식을 상상해 냈다. 표현 불가능성이라는 대원칙 아래, 상상된 의식들은 형이상학적 실험실 속에서 온갖 우주를 만든다. 도가니는 일종의 사고 실험 놀이터가 되어 내부에서 끝없는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사변만으로 이루어진 추상적 공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새로우면서도 진부했다. 그가 살고 있는 우주와는 전혀 다른 우주가 생성되었다가 파괴되는 것을 보는 것은 항상 새로웠다. 어떤 우주도 중복되어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우주를 보고 나면 공허하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워 거둘 수 없었다. 우주의 단순한 규칙에 따라 어지러이 펼쳐지는 진화, 혹은 그 규칙조차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흐르는 입자와 에너지의 흐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여러 신호가 섞여서 완전히 무작위적인 백색 소음은 규칙성이 없어서 매번 새롭겠지만 그것에서 뜻을 찾을 수 있겠는가?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래봤자 우주의 탄생에 대한 이론의 결정적인 증거 같은 시시한 일이리라.

그리하여 마지막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도가니 속에 파문을 일으킬 한 방울의 추가적인 용융액이다. 그는 자신의 뇌를 복제해서 시스템에 투입했다. 해당 개체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행동 양식을 관찰하기로 했다. 시스템 속 개체들의 속성과 자신의 특성을 결합하여 이질적인 존재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것은 도가니 속의 다른 의식과 몹시 상이하게 행동한다. 그것은 시스템의 다른 개체와는 다르게 존재론적 실험을 끊임없이 이어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복제는 스스로 의미라는 것을 정의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쫓아다닌다. 스스로가 우주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개체가 만든 우주에서도 표본을 채집한다. 그것은 순전히 추상적인 존재이면서도, 의미를 추구하며 물질에 집착한다. 그의 복제는 죽어가는 우주에서 이야기를 복원해서 모아두기 시작한다.

도가니는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고 복제된 그는 그 우주에서 의미를 찾아 선별하여 자신만의 도서관을 계속 확장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시간 동안 시스템을 관측하며 그것에만 매달렸다.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들은 그에게 글자 그대로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 이야기들이 예술적이거나 실용적인지, 유미주의적이거나 합리주의적인지, 그런 구분은 도서관 앞에서 무의미했다.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쏟아져나와 그의 지성을 자극하므로 앎에 대한 욕구가 무한정 충족되는 마약 같은 장난감이자 궁극의 경험 기계였다.

그는 그 이상을 원했다. 그는 육신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도가니 속으로, 그리고 한층 더 깊이 그것이 만든 도서관으로 잠수했다. 무중력 공간에서 유영하듯, 도서관으로 들어간 그의 몸은 어떤 힘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다. 어떠한 물질도 없는 완벽한 진공인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물질이 몸을 부드럽게 에워싸서 아주 포근하다. 영상을 천천히 재생하는 것처럼 그가 공간을 여유롭게 둘러보자, 모든 가능성의 이야기들이 각자 반짝이는 구슬에 담긴 모습이 보인다. 바깥에서는 정적으로 보였던 도서관은 모든 이야기가 아름다운 윤무를 춘다. 그중 구슬 세 개가 거울이 되어 이야기의 춤사위에 따라 천변만화한 상을 생성한다. 온갖 이야기가 세 개의 거울을 통해 무궁히 다양하고 형형색색으로 어지럽게 피어나는 상을 만들고,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 상은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낯설면서도 동시에 긴밀감을 불러일으킨다.

광경에 압도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의 눈에 한 구슬이 들어온다. 그가 손을 뻗어 그 구슬을 만지자,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던 이야기들의 군무에 균열이 생긴다. 불협화음처럼 일부 이야기들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시작은 나비의 날갯짓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매섭게 소용돌이치는 폭풍이 된다. 패턴에서 벗어난 움직임을 보이는 이야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부조화의 물결은 멀리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에 있는 구슬 두 개가 질량이 완벽히 똑같은 쌍성처럼 한 점을 중심으로 타원의 궤도로 움직이며 서로에게 근접했다가 멀어지기를 아슬아슬하게 거듭한다. 두 구슬은 중심점을 기준으로 데칼코마니처럼 움직이고, 각자의 궤적은 중심에 끌려가듯이 점점 반경이 작아진다. 반경이 작아지면서 회전하는 속도는 점점 더 가속되며 결국 중심에서 두 구슬은 부딪힌다.

구슬의 충돌은 순전히 그 두 개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개시로 삼아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저마다 접촉하고 깨지면서 도서관을 잡아먹을 바다가 일렁인다. 건조한 벌판에 번지는 들불처럼 모든 구슬은 산산조각 나서 하나의 이야기로 환원된다. 그 이야기는 순식간에 도서관을 삼켜버린다. 이야기의 파도가 그를 덮쳐서 심해로 휩쓸어 가버린다. 실제로 물에 빠지고 물리력이 행사되는 것처럼, 의식을 강타하는 불가항력은 그의 정신을 암전시켰다. 시야가 꺼지고 사고는 단편적으로만 이어졌다. 모든 감각이 사라져서 완벽한 허무만이 자리했다. 빛도, 소리도, 냄새도 없어서, 그는 자신의 존재조차도 의심하게 되었다. 시간 감각도 느낄 턱이 없으니,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심지어 도서관에서 빠져나온 것인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도서관 바깥의 도가니인지, 아니면 외부의 현실인지, 혹은 도서관 속의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 낸 세계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완전한 무의미와 무감각의 암흑 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었다. 그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제껏 수많은 언어를 접해왔으나, 그 어떤 언어와도 비슷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기억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기억에 따르면 말이다. 속삭임은 현실에서 느껴지던 백색 소음과 비슷해서 얼핏 말이 아니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본능이 그것이 의미가 담긴 말이라고 내부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속삭임은 정체를 유추하기 힘든 여러 목소리로 그에게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목소리가 중첩되며 그의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속삭임은 그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만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속삭임은 점점 많아지고 심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순간, 저 멀리 난데없이 불꽃이 튀듯, 빛이 번쩍이는 광경이 보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온 사방에서 온갖 형상이 번쩍이며 출현했다가 안개처럼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를 중심으로, 모순되게도 미시감과 기시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심상의 향연이 폭발하듯이 펼쳐졌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으면서도 익숙하지 않았고, 분명히 처음 마주했음에도 마음 한구석에서 친숙함을 감지했다. 흥미롭게도, 폭죽처럼 시각적으로 튀어나오는 이 이미지들은 속삭임과 분명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는 아무래도 이 모든 표상은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상상이 구체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모든 감각을 받아들이면서 자꾸만 한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생각은, 속삭임과 이미지들이 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과는 별개로 온전히 그가 독립적으로 하는 생각인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그 생각은, 그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고,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단 하나의 생각이었다.

어느 순간, 감각의 과잉은 잦아들었다. 대신, 어떤 구슬 하나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저기에 놓여 있는 구슬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구슬에 다가가려고 생각했다. 동시에 가상의 몸이 움직여서 구슬을 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구슬이 점점 커지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구슬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자,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을 뻗어 구슬을 집어 들었다. 완전한 구의 형태를 띠는 구슬은 투명해서 그 속이 전부 들여다보였다. 구슬 속의 우주는 그가 보기에 완벽하고 완전하게 느껴졌다. 구슬 속 세계에서 그는 한 존재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는 문득 그 존재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구슬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멀리서 관측했을 때 선명하게 보였던 모든 형상이 이제는 입자의 흐릿한 연무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희미한 안개 너머로 존재의 안광이 형형했다. 마침내 그는 나의 시선을 마주했다.

끝